[스크랩] 感遇(감우)-허난설헌(許蘭雪軒)
感遇(감우: 느낀대로 노래함)
盈盈窓下蘭(영영창하란) 하늘하늘 창문 아래 난초 있는데
枝葉何芬芳(지엽하분방) 잎들은 어찌 그리 향기로울까.
西風一披拂(서풍일피불) 가을바람이 한번 스치고 나면
零落悲秋霜(영락비추상) 슬프게도 가을 서리에 시들어버리네.
秀色縱凋悴(수색종조췌) 빼어난 그 모습 시든 후에도
淸香終不死(청향종불사) 맑은 향기는 없어지지 않는구나.
感物傷我心(감물상아심) 이 모든 것이 내 마음 아프게 하니
涕淚沾衣袂(체루첨의몌) 떨어지는 눈물이 옷소매를 적시누나.
古宅晝無人(고택주무인) 오래된 집이라 대낮에도 사람이 없고
桑樹鳴鵂鶹(상수명휴류) 뽕나무 가지에선 부엉이가 울고 있네.
寒苔蔓玉砌(한태만옥체) 찬 이끼가 섬돌을 덮고 있고
鳥雀栖空樓(조작서공루) 참새들이 빈 누각에 깃들어 있구나.
向來車馬地(향래차마지) 지난날엔 말과 수레들이 몰려들던 곳
今成狐兎丘(금성호토구) 지금은 여우와 토끼 언덕이 되었구나.
乃知達人言(내지달인언) 이제야 알겠네 현인들이 하신 말씀을
富貴非吾求(부귀비오구) 〃부귀는 내가 구하는 바가 아닐세.〃
東家勢炎火(동가세염화) 동쪽집 세도가 불길처럼 타오르던 날
高樓歌管起(고루가관기) 드높은 누각엔 풍악소리 울렸네.
北隣貧無衣(북린빈무의) 북쪽 이웃들은 가난하여 헐벗고
枵腹蓬門裏(효복봉문리) 굶주리며 오두막에 살았어라.
一朝高樓傾(일조고루경)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집안이 기울어
反羨北憐子(반선북련자) 도리어 북쪽 이웃들을 부러워하니
盛衰各遞代(성쇠각체대) 흥하고 망하는 거야 바뀌고 또 바뀌어
難可逃天理(난가도천리) 하늘의 이치를 벗어나기는 어려워라.
夜夢登蓬萊(야몽등봉래) 지난밤 꿈에는 봉래산에 올라서
足躡葛陂龍(족섭갈파룡) 갈파의 용을 타고 신선세계에 갔다네.
仙人綠玉杖(선인녹옥장) 신선들은 파란 옥지팡이를 짚고 나와서
邀我芙蓉峯(요아부용봉) 부용봉에서 나를 맞아 주셨네.
下視東海水(하시동해수) 눈 아래 펼쳐진 동해의 물을 내려다보니
澹然若一盃(담연약일배) 술잔의 술처럼 맑고 깨끗하구나.
花下鳳吹笙(화하봉취생) 꽃 밑에서 봉황새는 피리를 불고
月照黃金罍(월조황금뢰) 달빛은 황금 술항아리를 비춰주었지.
※ 참고
1. 지은이는 허난설헌.
2. 芬芳(분방) 좋은 냄새, 향기
3. 一披(일파) 한번 헤침.
4. 凋悴(조췌) 시들어서 파리해지다.
5. 涕淚(체루)는 눈물 체, 눈물 루 이므로 눈물.
체루탄 하는데 체루도 똑 같은 한자이다.
6. 沾衣袂(첨의몌) 옷소매를 젓게 한다.
7. 桑樹(상수) 뽕나무.
8. 鳴鵂鶹(명휴류) 부엉이와 올빼미가 울다.
9. 寒苔蔓(한태만) 차가운 이끼가 퍼지다.
10. 玉砌(옥체) 멋진 섬돌.
11. 鳥雀栖(조작서) 참새가 깃들다.
12. 向來(향래)는 지난번
13. 狐兎丘(호토구) 여우와 토끼가 있는 언덕.
14. 枵腹(효복) 뱃속이 비었다.
15. 蓬門裏(봉문리) 쑥으로 만든 문 안에 있다. 즉 오두막집에 살고 있다.
16. 反羨(반선) 도리어 부러워하다.
17. 遞代(체대) 어떤 일을 서로 번갈아 대신 함.
18. 難可逃(난가도) 달아나는 것이 어렵다.
19. 蓬萊(봉래)는 봉래산으로 중국 신화에서 동해에 있는 신선이 산다는 산.
한국에서는 금강산.
20. 足躡(족섭) 발로 밟다.
21. 葛陂龍(갈파룡)은 갈파는 중국 하남성에 있는 호수 이름으로
중국 고대 한나라 때 비장방 이라는 도사가 호수에 지팡이를 던지자
용이 되었다는 고사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22. 邀我(요아) 나를 맞이하다.
23. 黃金罍(황금뢰)는 술그릇 뢰 이므로 황금 술항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