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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한반도 지형을 그대로 빼 닯은 산이 강원도 영월에도 존재하지만, 이곳 충북 영도에 오면 역시 그대로 닮은 산이 또하나 있다. 바로 월류산[월류봉(月留峰)]이다. 월류봉은 산이라 이름 붙지 않고 봉이라 이름 붙였다. 그만큼 월류봉이 지닌 의미가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월류봉은 (月留峰) 글자 그대로 달이 머물다 간 봉우리란 뜻이다. 높이 400.7m인 월류봉에 떠오르는 달의 모양이 무척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강론을 펼쳤다는 한천정사 쪽에서 보면 떠오른 달이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흘러 계속 봉우리 주변에 머무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한다. 그래서 음력 보름을 전후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는 이제 단순한 산행보다는 테마 산행을 찾는 산꾼이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월류봉 아래로는 금강 상류의 한 줄기인 법화천이 흐르고 깨끗한 백사장과 강변에 비친 달빛이 아름답다. 깎아 세운 듯 똑바로 서 있는 월류봉 밑을 조망하면 말 그대로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이 산의 여덟 경승지를 꼽아 한천8경이라 부르는데,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이 남아 있다. 이 한천8경은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즐겨 찾던 명승지로도 유명하다 제 1경인 월류봉, 봄꽃과 가을 단풍으로 수놓아진 화헌악(花軒嶽, 제2경), 산 아래의 깊은 연못인 용연대(龍淵臺, 제3경), 깎아지른 절벽인 산양벽(山羊壁, 제8경)을 비롯하여 사군봉(使君峯), 냉천정(冷泉亭), 청학굴(靑鶴窟), 법존암(法尊菴) 등이 있다 월류봉을 산행하다보면 산행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 있는데요. 그곳은 바로 1950년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나흘 동안에 일어났던 황간면 노근리 사건 현장이다. 경부선 서울 기점 225㎞ 지점에 있는 노근리 쌍굴과 그 부근에는 전쟁의 상흔이 애절하게 남아 있습니다. 1950년 7월 후반, 노근리 쌍굴에 피신한 피난민에게 미군이 기관총 사격을 하여 250~300명 가량의 희생자를 낸 곳이다. 이곳을 지날때마다 모두들 경건한 마음으로 마음속으로 묵념을 하면서 그분들의 명복을 빌게된다. 쌍굴 중 한 곳은 흔적을 없애기 위해 과거에 시멘트로 덧칠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덧칠된 시멘트가 벗겨지고 있다. 은폐된 역사가 다시 되돌아 오는것 같다. 역사는 결코 왜곡할 수 없다는 진리라는 사실이 생각된다. 월류봉 능선을 따라 걷노라면 빛 고운 단풍과 청정수 금강 줄기가 보인다. 산행후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 있는 옥계 폭포를 한번 들러볼만하다. 충북기념물 제8호인 난계사는 우리 나라 3대 악성 중의 한 분인 박연(1378∼1458) 선생을 받드는 사당이다. 이곳에서 약 3km 정도 떨어진 옥계마을에서 산길을 따라 1km쯤 가면 옥계 저수지가 있고 단풍 숲이 우거진 산을 약 300m 올라가면 높이 30m의 폭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난계 박연을 비롯하여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찾았다고 하는 옥계폭포인데 매혹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폭포수가 장관이다. 한천8경을 다시 살펴보면 봉긋한 기압절벽으로 이루어진 월류봉의 의연한 자태 아래로 맑은 강물과 깨끗한 백사장이 펼쳐져 잔잔한 운치를 자아낸다. 봄꽃 또는 가을 단풍으로 수놓아진 월류봉을 화헌악(제2경), 월류봉 아래의 깊은 연못을 용연동(제3경)이라 일컫는다. 월류봉 일원은 한나절을 즐기기에 알맞은 공간이지만 하룻밤쯤 묵으면 더욱 감회가 새롭다. 월류봉(月留峰)이라는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달뜨는 밤 월류봉에 걸린 달과 그 달빛이 비쳐내리는 강변 풍치가 그윽한 낭만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월류봉 주차장 옆에 보훈의 집이 있다. 식당과 매점, 민박을 겸한 집으로 민물고기를 위주로 한 각종 메뉴가 맛볼 만하다. 먹거리를 찾을 경우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 뒤편의 작은 마을인 옥천군 동이면 조령리에 들르면 별미를 만날 수 있다
(휴게소 주차장 뒤의 너비 3m의 작은 굴을 통해 들어감) 피라미를 튀기고 조린 `도리 뱅뱅이'가 또한 유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