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2. 13:13ㆍ漢詩속으로
요즘 학교, 군대, 직장에서는 부사수와 사수, 멘티와 멘토 등의 멘토링을 중시한다. 신입이 일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이때 선임이 그간 겪었던 경험과 갈고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신입에게 도움을 준다면, 신입은 새로운 공간에 빠른 시간 내에 잘 적응할 수 있다. 우리가 무슨 일을 시작할 때 멘토링이 아니더라도 ‘롤 모델’을 설정하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같은 분야의 앞선 사람을 따라가면 시행착오를 덜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멘토링 제도가 있고 롤 모델을 정한다고 하더라도, ‘독립’을 할 때 고통이 찾아온다. 선배들이 일을 쉽게 하는 것 같아도 후배가 같은 일을 처음 할 때는 사소한 일도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실수라면 바로잡을 수 있다. 하지만 능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면 ‘나는 안 되는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한계는 ‘현재의 나’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문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지, ‘미래의 나’가 무능력하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마의 주름살, 손바닥과 발바닥의 굳은살, 몸 어딘가에 난 상처와 수술 자국, 마음 한 구석에 또렷이 새겨진 결심과 기억 등은 ‘현재의 나’가 ‘미래의 나’를 잉태했다 출산한 흔적이다. 그 흔적은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둘 수 없다’라며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섰기에 생긴 것이다.
논어 자한(子罕)편 11장
- 221번째 원문


• 喟 : 위(喟)는 한숨, 한숨 쉬다의 뜻이다.
• 然 : 연(然)은 그러하다의 뜻이지만 여기서 형용사나 부사 뒤에 쓰여 상태와 모양을 나타낸다. 위연(喟然)은 “휴” 하는 소리와 함께 숨을 쉬는 모양을 나타낸다.
• 仰 : 앙(仰)은 우러르다, 믿다의 뜻이다.
• 彌 : 미(彌)는 더욱, 널리, 두루, 오래다의 뜻이다.
• 瞻 : 첨(瞻)은 보다, 우러러보다의 뜻이다.
• 循 : 순(循)은 따르다, 좇다의 뜻이다. 순순연(循循然)는 차근차근, 또박또박의 부사이다.
• 約 : 약(約)은 묶다, 합치다의 뜻이다. 약(約)과 속(束)은 모두 묶다는 뜻으로 약속의 복합어로 쓰인다. 약속은 나를 특정한 시간대에 특정한 장소에 있도록 하는 것이니 ‘묶는다’는 의미를 기본 요소로 갖는다.
• 罷 : 파(罷)는 그치다, 그만두다의 뜻이다.
• 竭 : 갈(竭)은 다하다, 쏟아 붓다, 남김없이 하다, 최선을 다하다의 뜻이다.
• 末 : 말(末)은 끝, 마지막의 뜻으로 쓰이지만 여기서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아버지 공자의 자식 교육

요즘 부모들은 자식더러 “이 학원 다녀라, 저 학원 다녀라”라며 자식 교육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자식이 뭘 좋아하는지 차분히 알아보지도 않고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학원을 다른 곳으로 바꾼다. 공자는 아들 백어에게 필요한 공부를 슬쩍 알려주고 자식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교육을 했다.
공
자가 사상가로 알려지다 보니 자연히 그의 사상에 많은 관심이 쏠린다. 공자도 사상가 이전에 평범한 남편이자 아버지 노릇을 했을 것이다. 오늘날 부모들은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느라 온갖 고생을 하고 자식의 성적에 목을 맨다. [논어]에도 당시 사람들이 공자의 자식 교육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뛰어난 사상가 공자는 자식을 어떻게 교육시켰을까?” “공자는 아버지로서 자식을 어떻게 키웠을까?”
공자는 슬하에 백어(伯魚)라는 아들과 딸 1남 1녀를 두었다. 공자는 딸을 제자 공야장(公冶長)에게 시집을 보냈다. 그는 공야장을 사위로 삼으면서 설사 감옥에 있더라도 믿을 만하다며 전폭적인 신뢰를 나타냈다.([논어] ‘공야장편’ 1장) 또한 백어가 태어난 뒤 노나라 소공(昭公)이 공자에게 축하 예물로 커다란 잉어 한 마리를 보냈다. 공자는 이 일을 기념하느라 자식 이름을 리(鯉)로 지었다.
제자 진항(陳亢)이 백어를 만난 김에 평소 궁금하던 질문을 던졌다.([논어] ‘계씨편’ 13장) “그대는 선생님의 자식이니까 특별한 가르침을 받는지요?(子亦有異聞乎?)” 진항은 아마 공자가 제자들에게 공식적으로 교육하는 것과 달리 자식에게 특별 과외를 하지 않나 생각한 모양이다.
질문을 받고서 백어는 두 가지 일화를 전했다. 첫째, 시(詩)를 배우게 된 이야기이다. 어느 날 자신이 집안의 뜰을 지나가고 있는데, 아버지가 “시를 배웠느냐?”고 묻길래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시를 배우지 않으면 대화에 제대로 응할 수 없다”라고 일러주어서 시를 공부하게 되었다. 둘째, 예(禮)를 배우게 된 이야기이다. 백어가 전날과 마찬가지로 뜰을 지나니 아버지가 이번에는 “예를 배웠느냐?”고 묻길래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예를 배우지 않으면 교제에서 제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라고 일러주어서 예를 공부하게 되었다.
진항은 백어의 이야기를 듣고서 그 자리를 물러나서 ‘허허’ 하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한 가지를 묻고서 세 가지를 알게 되었네. (聞一得三)
시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 예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 (聞詩聞禮)
군자가 자신의 자식과 거리를 둔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又聞君子之遠其子也.)- [논어] ‘계씨편’ 13장
백어가 뜰을 바삐 지나다 아버지에게 한 수 지도를 받은 이야기를 ‘과정지훈(過庭之訓)’이라고 한다. 줄여서 ‘정훈(庭訓)’, ‘과정(過庭)’이라고도 하는데, 부모가 자연스러운 기회를 틈타서 자식을 가르치는 교육을 말한다. 진항의 말에서 보이듯 자식과 거리감을 두려고 한다는 ‘원기자(遠其子)’는 오늘날 되새겨볼 만하다.
요즘 부모들은 자식더러 “이 학원 다녀라, 저 학원 다녀라”라며 자식 교육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자식이 뭘 좋아하는지 차분히 알아보지도 않고, 또 충분히 기다리지도 않고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학원을 다른 곳으로 바꾼다. 공자는 백어에게 필요한 공부를 슬쩍 알려주고 자식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리는 교육을 펼치고 있다. 반면 오늘날 부모들은 당장 시험 성적을 올리는 기술에 집중하며 자식이 문제 풀이에 열중하도록 만들고 있다.
공자의 자식 교육은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은 ‘과정기훈(過庭記訓)’을 지어서 아버지 기진(奇進)의 가르침을 새기려고 했다. 또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둘째 아들 박종채(朴宗采)는 ‘과정록(過庭錄)을 지어서 아버지의 일화와 사적 그리고 교우 관계 등을 정리했다. 이것은 모두 아버지 공자가 자식을 어엿한 성인으로 키우려고 했던 교육을 이어받으려고 했던 자취이다.
알묘조장(揠苗助長)

맹자가 말한 알묘조장(揠苗助長)의 고사는 자녀 교육에 관해 시사한 바가 크다. 식물의 성장이든 지력의 개발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단계, 꼭 거쳐야 하는 과정,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있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시간 관념은 확연하게 다르다. 부모 세대는 자식 세대보다 최소한 20년에서 30년 정도 오래 살았다. 이러한 생활의 경험 덕분에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다음에 무엇을 하고 최종적으로 어떻게 된다는 결론을 알고 있다. 이 때문에 한 가지 일을 시작할 때 부모와 자식은 커다란 의견 차이를 보인다.
부모는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여 가급적으로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고 본다. 반면 자식은 하는 일이 새로운 일이므로 이것저것 해보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나아가 부모는 자신의 지혜를 제공하여 자식이 실패하지 않거나 힘든 일을 겪지 않도록 배려하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부모 노릇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반면 자식은 한 가지 일을 부모가 일러주는 대로 꼭 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고 다르게 하더라도 훨씬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자식이 개성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본다.
이와 관련해서 맹자가 말한 알묘조장(揠苗助長)의 고사를 살펴볼 만하다.
전국시대 송나라 사람이 엊그제 모를 심었지만
빨리 자라지 않자 속이 탔다. (宋人有閔其苗之不長)
참다못해서 그는 들로 나가서
땅에 심어진 모를 조금씩 뽑아서 들어올렸다. (而揠之者)
겉으로 보기에 모가 잠깐 사이에
몇 센티미터나 더 자란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온종일 일을 하고 나서
바삐 집으로 돌아가서 집안 사람들에게 자랑하듯 떠벌렸다. (芒芒然歸. 謂其人曰:)
‘오늘 힘들어 죽겠다! 나는 모가 쑥쑥 자라도록 도와주었다.’ (今日病矣! 予助苗長矣!)
그 말을 들은 자식이 깜짝 놀라서 들로 뛰어가서 살펴보니
모가 자라기는커녕 모두 쓰러져서 말라버렸다. (其子趨而往視之, 苗則槁矣.)- [맹자] ‘공손추편’ 상 2장
식물의 성장이든 지력의 개발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단계, 꼭 거쳐야 하는 과정,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있다. 그 단계, 과정, 시간을 건너뛰려고 하는 것이 바로 송나라 농부의 알묘조장이다. 모가 자라려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라는 것을 돕는 조장(助長)을 하니 오히려 말라서 비틀어져서 죽는 고사(槁死)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자식을 아낀다면서 ‘조장(助長)’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리는 “반드시 관심을 두어야 하겠지만 꼭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해서도 안 되고 까맣게 잊어서도 안 되고 자라는 것을 억지로 도와주려고 해서도 안 된다.(必有事焉, 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는 맹자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이해(理解)와 이회(理會)
우리는 교육, 업무, 인생에서 이해(理解)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해는 가장 기본적으로 말이나 글의 뜻 따위를 알아듣는다는 뜻이다. 나아가 이해는 사물의 본질과 내용 따위를 분별하거나 해석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남의 사정이나 형편 따위를 잘 헤아려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이해를 왜 강조하는 것일까? 이해를 못한다는 상황에서 아무리 교육을 받아도 그 당시는 아는 것처럼 여겨져도 지나고 나면 자신이 뭘 배웠는지 모르게 된다. 이해를 못하면 업무를 하더라도 간단한 일처리는 하겠지만 복잡한 일은 엄두도 낼 수가 없다. 이해를 못하면 인생살이가 팍팍하고 피곤하게 된다.
우리는 ‘이해’의 글자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해(理解)’는 글자 그대로 “이치(뜻)가 풀리다”는 뜻이다. 우리가 수학 공식을 배워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식의 뜻이 엉켜서 나의 머리에서 술술 풀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실타래의 실이 마구 엉켜버리면 아무리 많은 실이 있어도 쓸 수가 없다. 많은 설명을 듣고 교육을 받아서 말이 나의 머리에서 한 가닥씩 풀려서 생각의 길이 뒤엉키지 않게 쭉 이어진다면 우리는 이해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실이 엉키면 우리는 차분히 앉아서 가닥을 헤쳐서 엉킨 곳을 풀어낸다. 이것은 이해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잘 쓰지 않지만 이해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이회(理會)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회(理會)는 글자 그대로 “이치가 나의 머리(가슴)에서 모이다”는 뜻이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문자의 뜻이 나의 머리(가슴)에 들어와서 만나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다면 알았다고 할 수 없다. 반대로 낱말과 문장의 뜻이 시선을 따라 나의 가슴(마음)에 전해져서 “아, 이런 뜻이구나!”라고 감탄사를 터뜨리게 되면 책의 뜻과 가슴(머리)의 뜻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감탄사는 그 만남의 장면을 축하하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사상가 중에서도 주희(朱熹, 1130~1200)는 책읽기와 교육의 이회의 가치를 강조한 인물로 유명하다. 이회를 한다면 책의 한 글자에서 문장으로 그리고 책 전체로 관심을 넓혀서 마지막으로 지은이와 책을 두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이회와 이해의 교육이 바로 공자의 문하에서 안연히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둘 수 없는 욕파불능(欲罷不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 글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유학대학 학장을 맡으며 동양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2011), [신정근 교수의 동양고전이 뭐길래?](2012),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2010)], [맹자와 장자, 희망을 세우고 변신을 꿈꾸다](2014), [동양철학, 인생과 맞짱뜨다](2014) 등이 있고, 역서로는 [소요유, 장자의 미학](공역, 2013), [중국 현대 미학사](공역, 2013), [의경,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공역, 2013) 등 다수의 책이 있다. 앞으로 동양 예술미학, 동양 현대철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인문학과 예술의 결합을 이룬 신인문학 운동을 진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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